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잭 캘리라는 한 신문기자가 소말리아의 비극을 취재하다가 겪은 체험담이 있습니다.
기자 일행이 수도 모가디슈에 있을 때의 일인데 그때는 기근이 극심한 때였습니다.
기자가 한 마을에 들어갔을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그 기자는 한 작은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온몸이 벌레에 물려 있었고, 영양실조에 걸려 배가 불룩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빨갛게 변해 있었으며, 피부는 한 백살이나 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마침 일행 중의 한 사진기자가 과일 하나 갖고 있어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너무 허약해서 그것을 들고 있을 힘이 없었습니다.
기자는 그것을 반으로 잘라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소년은 그것을 받아들고는 고맙다는 눈짓을 하더니 마을을 향해 걸어 갔습니다.
기자 일행이 소년의 뒤를 따라갔지만 소년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소년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한 작은 아이가 땅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은 완전히 감겨 있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는 소년의 동생이었습니다.
형은 자신의 동생 곁에 무릎을 꿇더니
손에 쥐고 있던 과일을 한 입 베어서는 그것을 씹었습니다.
그리고는 동생의 입을 벌리고는 그것을 입 안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동생의 턱을 잡고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동생이 씹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기자 일행은 그 소년이 자기 동생을 위해 보름 동안이나
그렇게 해온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결국 소년은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동생은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펌 글)
지구촌 곳곳에서 하루 한끼 음식으로 겨우 연명하거나 굶어죽는 자들은
부자의 대문 밖으로 던져지는 부스러기로 연명하다 죽었던 나사로와 비슷합니다.
(지구촌 인구의 약 70% 정도가 고픈 배를 움켜쥐고 매일밤 잠이 든다고 합니다)
부자가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호칭한 것으로 보아 하나님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나눔이 없는 부자들의 삶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요, 기만적입니다.(눅16:19~)
나눔이 없는 교회는 교회로써 존재 가치를 상실한 이기적인 끼리집단일 뿐입니다.
그런 교회라면 주예수와 십자가의 복음을 팔아 장사하는 장사치에 불과하며
자기 배만 불리는 강도의 굴혈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눅19:45/ 요2:16/ 마21:13)
육적 가난... 굶주림... 헐벗음... 고통받음,
영적 가난... 굶주림... 헐벗음... 고통받음,
가난은 이렇게 두 차원에서 조명되어야 합니다.
어느 하나도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육적인 나눔만 중요하고 영적인 것은 하찮은 것이라고 한다면 좌익신학이 되며
영적인 나눔만 중요하고 육적인 것은 하찮은 것이라고 한다면 우익신학이 됩니다.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도록(잠4:27)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육의 양식도 나누어져야 하지만, 영의 양식 역시 나누어져야 합니다.
나는 조금의 여유밖에 없으니, 더 가진 자들이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나님 앞에서는 핑계요, 궁색한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달란트(적은 은혜)밖에 못 받았다고 해서.. 숨겨 두었다면
그날에 "악하고 게으른 종"(마25:26)이라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 말씀과 은혜의 양식을 사랑으로 나눌 때, 항상 겸손한 태도로
섬기는 자세로, 양보하는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마음만 있다면 무엇으로든지 남을 돕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랑만 있다면 콩 한개도 나눠 먹을 수 있습니다. 냉수 한 잔,
따스한 인사 한마디나 격려 한마디, 미소 한조각이라도 나눌 수 있습니다.
콩 한쪽을 나누든 콩 백가마를 나누든 그것은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과 달란트대로 나누고 섬기는 삶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보잘 것 없는 자, 힘이 없는 자들, 약하고 눌린자, 착취당하는 자들의 편에
서 함께 아파하며..돕고, 섬기며 나누는 당신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제자이며, 계명과 성령의 법을 따르는 참 성도입니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자는 비굴한 자입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슨 일에든 늘~ 가진 자, 강자의 편에 서서
늘상 강자의 논리만을 대변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일입니다.
구조적인 비리와 압력속에서 코 앞의 자기유익만을 위해 강자를 대변함으로
더욱 약자를 짓밟거나 이용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겠습니다